1월 4일
늘 즐겨보는 그것이 알고싶다에 너의 사연이 나오는것을 알고 아저씨는 차마 티비를 틀지 못했단다. 눈물이 쏟아질까봐. 앞으로 더 행복한 날을 보내야 할 너의 몸과 마음은 멍 투성이었다. 여기저기 부러진 자국이 나올때 아저씨는 차마 더 보지 못했다.
아저씨는 너가 어린이집에 있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너무 아펐단다. 하루종일 너가 앉아있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몇번을 울었단다. 어쩌면 새벽이와 친구가 될수도 있었던 정인아, 아저씨가 해줄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하고 가슴이 아퍼서 그저 멍하니 거리를 걸었단다.
그리고 아저씨는 다짐했단다. 앞으로는 아저씨는 주변에 혹시나 지킬수 있는 아이들이 있는지 눈에 불을켜고 찾아 지킬 생각이란다. 정인아, 나중에 아저씨랑 만나면 아픈곳 없이 꼭 안아줄께.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야, 미소가 사랑스러운 정인아, 누군가 너를 한번이라도 행복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만 안고 하늘에서 행복하게 살렴.
1월 20일
창밖의 밝은 밤을 보며 나는 새벽이를 안고 있다. 깜깜한 거실속에서 새벽이를 안고 자장가를 부른다. 되는대로 생각나는대로 가사를 지어낸 자장가는 소재가 고갈되는 일이 없다. 오늘은 어땠는지, 어제보다 나아졌는지, 내일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사속에 맞춰 넣는다. 어느새 2년이 다되어간다. 1년 전 오늘은 어땟는지 늘 복기 해보는게 새벽이를 안고 하는 생각이다. 첫 뒤집기를 하네 마네 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랬듯 대견하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발달에 대한 걱정은 쉬이 떨칠수가 없다. 괜찮겠지 하면서도 안괜찮으면 어쩌지 라는 막연함.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빛하나 없는 깜깜한 방에서도 새벽이의 얼굴이 보인다. 괜한 걱정인듯 하다. 내일일은 내일의 나에게.
3월 18일
항상 하는 아침 스트레칭인데 새벽이는 싫다고 때를 썻다. 요즘 들어 부쩍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새벽이를 보며 신기해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스트레칭은 아픈가보다. 한차례 스트레칭이 끝나고 새벽이가 걷는 모습을 보는데 여전히 부자연 스러운게 맘에 걸려서 조금 화도 나고 속상했다. 좀더 쌔게 해주려고 보조기를 신기고 강도를 높혀서 했는데 새벽이가 아프다고 내손을 막는다. 그래도 해야지. 땀날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남는게 없다.
가슴이 너무 아펐다. 새벽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며 이게 뭘 위해 하는지 잠시 목적을 상실했다. 목적상실의 시대. 새벽이를 키우는 그 기간은 대부분 그러하다.
할머니와 함께 병원으로 떠나는 길을 배웅하고 텅빈 집에 새벽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보니 눈물이 났다. 있다가 오면 꽉 안아줘야지. 오랜만에 가슴이 미어지게 아픈 아침이었다.
4월 27일
늘 같은 날들의 반복이다. 요즘들어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벽이 덕택에 생활리듬이 무척이나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새로워진 재활동작들을 새벽이가 너무 아퍼해서, 엉엉 우는 새벽이를 보면 이걸 계속 해야하는것인가 라는 생각에 멈칫 멈칫 하게된다. 울지 않으면 안될꺼 같은 기분이 있다. 기운이라고 해야하나. 울어야 다음으로 넘어갈수 있을것만 같은. 새벽이를 안고 울었다. 1주일만 있으면 새벽이가 태어난지 2년이 다되어가는데, 아직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구나.
어느날, 내품에서 곤히 잠든 새벽이의 발을 보니 그날의 이름없던 아이의 발이 생각났다. 첫 면회를 들어가려고 준비하던 그때, 마치 영혼이 분리되는 아련한 기분. 빨갛고 투명한 엄지손톱만 했던 발. 눈마져 가려놔서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도 몰랐던, 그아이는 이제 13키로가 훌쩍넘고, 새벽이라는 이름도 있다. 두툼한 뱃구리를 들고 안으려면 새벽이가 힘차게 내 목덜미를 움켜쥔다. 항상 내 왼쪽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많이 컸다 내아들. 아직 갈길은 멀지만, 가끔씩 지칠때면 옛 사진을 보면 정신이 차려진다. 내가 지금 이럴때가 아니지, 하고.
오랜만에 일기를 다시 읽다가 눈물이 쏟아졌다. 잠시 잊고 있던 힘든 시간들.
곧 세번째 5월 3일이 온다.
6월 9일
몇주전 2년간의 기록을 모아 한편의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유튜브에 올리고 내가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 몇명에게 따로 보냈다. 새벽이가 이렇게 잘 컸노라고, 그리고 기도해주신 더택에 우리가 이만큼 잘 버텼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사실 새벽이 두살 생일전에 완성시켜 공개하고싶었는데, 그동안 뭘 그렇게 많이 찍어놨는지... 정리하는데만 꼬박 몇일이 걸렸다. 만들면서도 눈물이 났고, 다 만들고 나서도 눈물이 났다. 아 내가 이런 시간들을 헤쳐나왔구나, 우리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었구나. 정말 괴로웠던 2년의 시간을 16분으로 압축해놓았으나, 그간 고생했던 시간들은 그대로였다.
어제 그 영상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엊그제 자기 아이도 560그람으로 태어났다고, 내 영상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언젠가 내가 헤쳐나온 길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수 있다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적이 있었다. 내가 유튜브체널을 열었던 이유또한 그랬다. 나는 댓글에 뭐라고 답을 달까 고민을 했다. 그때의 내가 떠올랐고, 한순간 전복된 삶의 방향에 정신을 잃을정도로 혼란스러웠고,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다. 그런 시간들을 겪어온 내가 2년전 나에게 할수있는 말은 뭘까.
나는 “아기는 우리들 생각보다 강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버텨야 합니다” 라고 적었다.
과연 힘이 될까?
7월 5일
불안하다. 새벽이가 잘 하던걸 안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다. 오늘도 아침밥을 안떠먹고 딴짓만 하는 새벽이를 보고 불안했다. 왜 숫가락질을 하지 않는 걸까. 포크를 쓰는건 바라지도 않는데. 그러고 나면 혼란스럽다. 결국 오랜만에 울었다. 호명반응도 잘 안되는 새벽이에게 큰소리로 이름을 불러봤다. 나를 바라보는 새벽이의 순수한 눈빛에 순간 나는 울음이 터져버렸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걸까. 울고있는 내 곁에서 새벽이는 눈치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관찰하는 건지, 알수없는 눈빛을 나에게 보낸다. 나는 안아달라고 했다. 새벽이가 안아줬다. 난 큰소리로 울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뭘 바라고 새벽이를 대하는 것일까.
새벽이의 두툼한 가슴팍을 안고 한참을 생각했다. 아내와 싸우고나서 뭔가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새벽이를 안고 한바탕 울었더니, 또 한켠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겠다. 일찍이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새벽이를 맞이해야겠다.
10월 24일
한참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일들이 있다. 간신히 버티는 하루 하루가 이어져 결국엔 하나의 추억이 되는 것. 별일 없이 산다는 건 제일 힘든 일이 아닐까. 요 사이 별일 없이 사는 것 같다가도, 밥을 잘 안먹는 새벽이를 보면 가슴 한켠에 꾹 눌러놓은 불안감이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새벽이가 태어나고 뭐가 제일 스트레스였나 물어본다면, 단연코 먹지 않았던 순간이다. 새벽이 입에 있는 섭식관을 볼때면 발끝부터 올라오는 답답함과 어찌 해줄수 없는 무기력감에 괴로웠다. 새벽 4시까지 지켜보며 먹이는 것과 사투를 벌였던 그날을 생각하면 차라리 군대를 한번 더 가는게 나을 것 같다. 그때의 나로는 절때 돌아가고 싶지 않다.
요사이 새벽이는 어금니가 가려워서인지 밥먹는것에 집중을 못할때가 많다. 한동안 흘리지 않던 침도 흘린다. 그것은 단지 밥을 안먹는다는 것 인데, 못먹는다는 것이 아님에도 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내가 어찌 할 수가 없다. 그순간 그 상황을 피해야 하는데, 그럴 상황이 못된다. 문제는 그 스트레스가 한켠에 몰아놨던 걱정과 근심과 함께 찾아온다는 것이다. 지금의 새벽이는 그때보다 나아 졌는데, 나아진 상황을 의심할수 밖에 없게 만든다.
나는 가끔 내가 마음 어딘가에 병이 생긴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거 같은데, 나는 그걸 고칠 시간이 없다. 그저 한참이 지나고 나서 모든게 별일 아니길 바래고 있다.
새벽이가 태어나고 나서 인생은 별거 아닌거 같다. 사람은 먹어야 에너지가 생기고, 그 에너지로 하루를 사용하면서 여러 일들을 한다. 예전엔 안먹고 말면 그만인 아침밥을 이제는 늘 챙겨먹어야 하고, 일을 하다 점심은 뭘 먹어야하나 고민하고, 새벽이 저녁을 먹이고는 오늘은 몇시에 잘려나 기대하게 되는. 결국 인생은 밥에서 밥으로 이어지는 삼시세끼의 하모니 아닐까. 인생은 삼시세끼.
내일의 새벽이 삼시세끼를 걱정하는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우리네 인생.
11월 1일
부산에서 돌아왔다. 가기전부터 아이와 함께 부산에 간다는 기대감에 엄청 설래였었다. 하지만 사실 어제부터 하루종일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아내는 오랜 시간 차를 타서 그런지 컨디션이 떨어지고, 나도 엄청 피곤했다. 경주에 도착하는 날에 결국 쉬어야했고 나는 혼자 새벽이와 함께 경주에 나왔다. 혼자 애보는거야 뭐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까 편안했는데, 새벽이가 요근래 몸에 힘을 주면서 부들부들 떠는걸 반복했다. 별일 아니겠지 하며 아무렇지 않게 하려 해도, 계속되는 반복에 결국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하지마 하면 떠는걸 보면 뭔가 화가 난거같은데,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거 같다. 결국 밥집에서 계속 떠는 아이의 양 볼을 세게 잡았다. 나도 부모가 처음인데, 나는 어디 하나 기댈곳이 없는 기분이다. 내 성격이 문제인지.
새벽이에게 화를 낼수도 없고. 첨성대 옆 공터에 와서는 새벽이와 한참을 놀았다. 그날따라 침을 어찌나 흘리는지 나는 새벽이를 안고 괜찮냐고 물어보다가 눈물이 나와버렸다. 새벽이는 나에게 기적인데, 나는 새벽이에게 기적이 되는지 모르겠다. 노을이 예쁘게 져가고, 가을 냄새를 물씬 풍기는 나무들을 옆에 앉아서 한참을 있었다. 오랜만에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일어나는 것도 내 몫인거 같아서 더욱더 서글펐다.
11월 25일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고요한 아침이다. 새벽이는 어제 재활을 위해 입원했다. 입원 전까지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더니, 막상 입원 당일에는 잠잠했다. 마지막까지 병원 로비에서 뛰어놀다 쿨하게 떠나는 새벽이를 보며 대견했다. 내가 우울하고 슬픈건 상관없다. 새벽이만 좋으면 되니까. 새벽이에게 엄마랑 재밌게 놀다 오라고 얘기해줬다.
새벽이 다리는 뻣뻣함이 남아있지만, 요사이 스트레칭 해줄때 보면 많이 부드러워져있다. 천천히 걷기를 연습하면 뒤꿈치 대고 걷는게 바닥 진동을 통해 느껴진다. 제법 층간소음도 만들어낸다. 재활 첫날 새벽이를 보던 의사선생님이 새벽이 걷는걸 보며 놀랐다고 했다.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업을 벌써 1년이나 넘게 했다. 뻣뻣한 발목을 스트레칭해주느라 아침마다 땀범벅이었던 여름과, 처음으로 용기내서 손잡고 걸어갔던 그 길과, 놀이터를 나가기 위해 딱딱한 보조기를 채우며 쉬던 한숨들, 보조기 신은 새벽이를 보며 아이가 어디가 아프냐고 묻던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답했던 날들.
매일 엄지발가락을 끌며 걷느라 깨져버린 엄지발톱을 다듬어주며 속상했던 날들, 조금이라도 바닥이 고르지 못하면 넘어질까봐 조마조마했던 날들,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 손 터는걸 먼저 가르쳐야 했던, 숫가락질 안하면 잊어먹을까봐 아침먹을때마다 매번 가르쳤던 시간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래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때로는 답답한 마음에 큰소리로 울었던 날도 있었는데, 어느날엔 새벽이가 울고 있는 나를 안아줬던 적이 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건가 싶을때면 새벽이는 늘 큰 위로가 됬다.
어느날 보면 계단을 뚜벅뚜벅 오르고,
또 어느날 보면 작은 계단들을 잘 내려오고,
새벽이는 늘 안되던 무언가를 해냈다.
이제는 내가 한숨 돌릴차례인거 같다. 조금 숨을 가다듬고, 다음에 있을 새벽이를 위해 힘을 비축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