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7일
우리는 때론 어떠한 기회로 죽음에 대한 경험을 하게된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고, 죽음은 장황한 끝이 아님을.
새벽 5시에 걸려온 전화에 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직감했고, 그날 오전에 나와 동생은 휴가를 받아 군부대를 빠져나왔다. 그래도 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때가 되면 배가고프기에, 나와 동생은 버스타기 전 설렁탕으로 배를 채웠다. 실로 믿겨지지 않았지만, 예측은 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당황하지도, 깊은 슬픔에 빠지지는 않았던것 같다. 딱딱하게 굳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숨이 빠져나간 후의 차가움을 만져봤고, 그제서야 실감이 났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예측하지 못한채 맞이한 그날의 그일또한 내가 늘 죽음과 같이 살고 있다는걸 또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어쩌면 늘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걸쳐서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아내가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오면서 안도했지만 내 작은 아들은 겨우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삶을 향해 힘겹게 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죽음이란 큰 일인가. 과연 삶의 종착점일까. 죽는다면 사라지는 것일까.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말동안 새벽이는 숨쉬는게 곤란해 보였다. 투시가 안되는 눈을 가진 나로썬 새벽이의 폐를 들여다 볼수가 없기에 그냥 울리는 알람만 막연하게 바라보며 떨어지는 숫자를 응원한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의 문턱에서 시작된 삶. 응원하기에도 서글픈 내 아들의 삶. 슬프다.
내일은 뇌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다. 무슨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혹시나 못서거나, 지능이 모지라거나, 숨을 못쉬거나 하진 않을까. 내 아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늘 걱정이지만 늘 할수있는건 없다. 내일의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새벽이 오기를 기다린다.